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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드롭   희망, 당신의 죽음을 기원합니다
W. 다래

Dream 001.


“살아주세요.”

 어릴 적부터 드는 생각이였다. 봄에 피는 꽃들은 아름답다. 여느 매체들이 그렇듯 꽃들조차도 숨통이 끊어져갈 때 즈음 자신의 거죽을 벗겨 암술과 수술을 내보이는 것이 아름다운 것인데 봄에 피는 꽃들이 정확히 그러하였고, 또한 생명을 완전히 잃고 짖이겨질 때에도 고상함을 잃지 않으며 그 허연 속내들을 만연하게 흩뿌리는 것이였다. 그렇기에 나는 모든 사람들이 떠나가는 시린 봄에 그런 말들을 지껄일 수 밖에 없는 것이였다. 

 

“제가 다시 예전의 인우씨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웃는다. 일인칭과 이인칭이 공존할 수 있듯 겨울과 봄이 공생하는 바람이 창문 새로 아무렇게 튀어나와 나를 부드럽게 휘어잡으며 머리칼 따위를 흩날리게 만든다. 그렇게 당신은 사람을 아래로 끌어당긴다. 낯에는 뻔뻔스러운 입꼬리를 곱게도 휘어 미소를 띄운다. 이별의 계절이 오기 전 수없이도 지켜본 웃음이였다만 언제나 나를 약하게 만든다. 내 의중이 무엇이든.

 

“그럴까요?”

 

 봄에 피는 꽃들은 또 그렇다. 사라지지 않을 듯 언제나 해사하게 웃고 있다. 그러지 못할 걸 안에서는 알면서도 약속들을 계속 세운다. 꽃들을 가슴 속에 심으면 곧 숨이 막혀 죽을 걸 알면서도 그들에게 물을 준다. 그런 모순들처럼 당신은 지금 나를 진정시키려 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들처럼 웃기게도 우리는 서로 사랑을 하고 있었다. 그러지 못할 걸 알잖아. 왜 하필이면 내 가슴속을 답답하게 만드는 것이 차가운 못이나 사람을 증오하는 것들이 아닌 죄다 포근한 감정들이여야 했냐고, 뱉어낼 수도 없게.

 

아, 나 뭐라고 말 해야 되는데. 목울대 뒤까지 텁텁하게 가득 찬 열락들이 잔인하게도 말문을 막는다. 때때로 울음을 참는 것은 어떤 독화보다도 더 쓰라린 고통이다. 마주했던 시선을 왼쪽 아래로 내리깐다. 쌍꺼풀이 파르르 떨리고 하순을 최대한으로 깨물어 숨기려고 했던 감정들이 늘상 당신 앞에 자리하게 된다. 내가 어떤 거짓도 당신 앞에 몰아넣지 않으려는 이유였다. 검디 검어서 결국엔 투명해져버린 조각들이 눈 아래로 우수수 떨어진다. 끝까지 숙인 고개를 타고 흘러내리는 것들이 코에서 얼마 못 가 톡, 톡. 대리석 바닥을 적신다. 어느새 깊게 패여버린 붉은 눈시울로 당신 눈 속을 바라본다. 

 

“···살려달라는 말은 들어봤는데, 살아달란 부탁은 처음 받아봤어요.”

 

 내가 살 수 있을거라 생각해요, 동식씨는? 똑똑히 마주한 두 눈동자들이 서로의 감정을 최대한으로 숨기려고 노력한다. 속으로 콕 박히는 목소리들이 연신 귀를 부정하려 든다. 부드럽게 흘러내린 남은 눈물들이 붉게 상기된 볼 언저리의 온도를 뺐어간다. 느리게 손을 움직여 애써 흐름을 막는다. 검지 손가락이 두 눈을 꾸욱 꾹 문지른다. 지독하게도 숨을 빼어낸 코가 옅게 되먹는 소리를 낸다. 거절도 허락도 동의도 아닌 대답 한 마디가 가슴 속을 막 헤집고 나선 소리 소문도 없이 자리한다. 여전히 웃고있는 채로, 내 앞에 아무 미동도 없이 자리한다. 

 말문이 막히기 시작했다. 한 번 들이마쉰 숨은 잔인하게도 그 이상으로 나를 얽매였고 현실과 과거와, 그 모든 시점들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시야가 잔혹하게도 비틀리기 시작한다. 제 앞에 자리하는 네 얼굴이 가엽게 초첨을 잃어간다. 점멸하는 세상 속 착각이였나 싶을 찰나의 순간에, 묵묵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너가 미약의 움직임을 보인다. 느리게 손을 올려서 아직도 울음에 젖어 있는 제 볼 가까이로 가져대더니, 입꼬리를 고이 당겨 웃었다.

 

“동식씨. 꿈을 안 꾼게 푹 자는 거래요. 어서 깨요, 늦었어.”

 


 

Day 001.


 

가파른 숨이 몇 분 전만 해도 침묵으로 감싸 있던 온 방 안을 가득 채웠다. 힘겹게 떠진 눈꺼풀이 다시금 방 안의 풍경을 인식한다. 다를 게 없는 가구들의 위치와 햇빛이 비추는 책상 위, 침대 시트의 부드러운 촉감까지도 매일이 다를 것 없는 하루였다. 아, 쓸데없이 늦게 깨버렸어···. 짜증 섞인 어조로 내뱉으며, 한 손으론 뒷목만 연신 매만졌다. 무슨 꿈을 꿨길래 한겨울에 이리 덥지? 푸석거리는 손으로 눈을 연신 비볐다. 축축해진 눈가와 출처를 알 수 없이 자신을 뒤덮은 모든 슬픔들이 심기를 콕콕 건드린다. 비척거리는 걸음을 애써 이끌고서 향한 화장실에는 다크서클을 가진, 누가 봐도 힘이 없어 보이는 육동식이 서있었다. 끄응, 일어났을 때부터, 아니 어쩌면 일주일 전부터, 아니 어쩌면 자살을 생각하고 기억을 잃고 지독하게도 얽혀진 운명의 꽃말인, 서인우와 처음 눈을 마주친 그 순간부터 예감한 그 모습의 육동식이 실체화 되어 있었다. 깊게 패인 눈두덩이에 생긴 자국을 지분거리면서, 뱉을 수 있는 건 긴 한숨뿐이였다. 

 

“괜찮아, 육동식. 다 끝난 일이야.”

 

 그 말대로 정말 모든 건 3년 전 끝난 일이였지만, 여느 상처에도 자국이 생기고 딱지가 붙어 새 살이 돋기까진 시간이 걸리는 터였고, 평소와 다르게, 마치 꿈을 꾸는 듯했던 그 시간의 기록들은 겹겹히 자신의 정신 몇 조각을 차지해 그 온 신경을 좀먹이고 있었다. 내가 조금이라도 그 사람들에게 가진 살해 의지나, 눈 앞에서 봤던 사람이 죽는 장면이나, 여전히 자신을 향한 언론의 시선이나. 온통 그런 것들이 다시 평범한 생활로 가는 건을 막았다. 매일 똑같은 하루라는 것 그저 겉포장지였고.

 안 되겠다. 거울속에 비춰진 모습을 바라보기가 벅차 우르르 화장실을 빠져나가는 발걸음이 사뭇 무거웠다. 짓누르는 피곤함이 자신을 가득 메운다. 오늘 아침 메뉴는 스크램블로 정할까, 거기다가 사과를 겉들일까 말까. 막상 실행할 자신도 없는 계획들을 세우며 소파에 풀썩 앉았다. 티비 속으로 흘러나오는 모든 언론과 가십거리들은 모 회사의 비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참, 그냥 싸가야겠다, 아침. 계속 카페 개장을 보경씨한테 맏기는 것도 민폐니까.”

 

 으쌰, 일하자 육동식. 오늘 주말이라서 안그래도 예약 많은데 아침에도 힘내야지. 힘껏 팔을 펴서 핀 기지개와 함께 비척거리며 주방으로 다가갔다. 방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깜빡거리는 불빛의 주인은 세련된 디자인의 육동식 전용 노트북이였고, 그 안엔 빨간 단어 교정이 가득한 원고가 들어있었다. 저걸 들고 갈까. 부동 자세로 고민을 이어가 멈취있던 손이 곧 노트북을 집어 도시락이 있는 그 가방에 단정하게 욱여넣는다. 삑 소리와 함께 열어젖힌 문 사이로 시원해진 바람들이 부드럽게 자신을 막고 지나간다. 꽃샘추위라고 흔히들 칭하는 쌀쌀한 날씨가 문틈 사이로 찬란하고 또 은은하게 향수적인 봄향을 끌어올린다. 손을 금방도 시리게 만들어도 기분은 붕 뜨는 것이 딱 봄이 올 날씨다.

 


 

*

 

“네~ 41분 36초 걸리신 양산장의 살인사건 테마 방탈출이 끝났습니다. 기념사진은 요쪽에서 촬영하시면 되시구요.”

 

 북적거리던 방탈출 카페 안이 진정된 듯 한순간 소리를 잃고 고요한 대화 소리들만 일렁인다. 오늘 일은 여기까지인가. 표를 여유롭게 확인하던 손이 기지개를 쭈욱 편다. 이제 저쪽 방 청소 돌리고, 다시 셋팅하고. 그리고 문 닫으면 되겠다. 가끔씩 일정한 규칙으로 반복되는 작업들이 머릿속을 텅 비우게 해 준다. 그리고 글  작업 마무리하고 자야지. 네, 감사합니다~ 두 커플이 나가는 소리에 대답하며 카운터를 나섰다. 잔잔하게 깔리는 음악이며 일정한 패턴으로 움직이는 대걸레까지 가라앉았던 기분을 붕 뜨게 해준다. 끝내 달랑이는 소리를 내며 불이 달칵 꺼진다. 영업을 마친 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필시 가벼워졌다. 일에 끼어 사는 일은 그 직종을 회사에서 자영업으로 바꿨을 때나 변함없이 힘들었지만. 

 

 아, 벌써 졸려. 담담하게도 눈 안의 육동식을 담던 몸이 정신을 번뜩 차린 듯 멍하게 거울 속을 바라본다. 때론 그리 대단하지도 않고, 때론 자신의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무서운 존재였다만, 점점 망각이라는 축복에 점철되어 이젠 아무런 기억도 담고 있지 않는, 그저 나일 뿐인 그 피사체를. 이 시점에서 육동식은 모든 걸 외면하고 살아가리라 결심했다. 더 이상의 피해나 몰입은 원치 않아서. 이 정도면 충분히 놀아났다고 생각해서. 차가운 감이 아직도 남아있는 얼굴 전체를 수건으로 감싼다. 모든 일을 마치고 잘 준비를 하자 기다렸단 듯 쏟아지는 피로함이 뭉근하게 자신을 눌렀고. 

 

 


 

Dream 002.



 

 탁,탁. 책상을 선지로 일정하게 두드리며 생긴 마찰음이 온 방을 감싼다. 이번엔 아무 말도 없이, 그저 그 소음만이 둘 사이에 존재한다. 가만히 내 앞에 자리하곤 입이 할 말이 있다는 듯 입을 달싹이지만, 그 입 새에서 나온 건 그저 한숨뿐이였다.

 

“오늘도 왔네. 보고싶었어요.”

 

 그 말을 시작으로 가만히 마주 얽히는 시선이 퍽 투명하다. 보통 눈맞춤이라 함은 서로의 겉모습을 살피거나 상대가 가지고 있는 감정을 풀어내기 위해 하는 것이였는데, 우리가 그 행위를 하는 목적은 아무래도 없었다. 두 사람이 서로를 기억하기 위해서라고 말하면 조소를 지을 테지. 검고 별로 깊지도 않아 보이는 두 눈동자가 부드럽게, 다음 말을 기다리는 듯 깜빡였다.

 

“왜 왔어요? 아닌가. 내가 초대했나.”

“저는 별로 안 보고 싶었어요. 이사님.”

 

 저 이제 이사님 아닌데. 자연스네 눈을 돌린 서인우가 그 말을 내뱉으면서 희미하게 미소를 띈다. 호칭 정리는 언제 하려나. 그러다가 그 시선이 능청스럽게 제 정장을 향한다. 어릴 때부터 교육을 받아 왔기에 퍽 당연한 것이였겠지만, 감정을 숨기는 데는 터무니없이 재능이 있었다.

 

“이 옷이 가장 맘에 들었어요? 동식씨는. 그럼 말을 해주지. 많이 비싼 옷도 아니였는데.”

 

 그만하고 일단 앉을래요? 그제서야 눈이 찬찬히 주변 환경들을 인식한다. 부분 부분 바스러지거나 형체를 알 수 없이 둥둥 떠다니는 조각들도 있었지만, 그 자리에 원래 있어야만 하는 것들처럼 자연스러워 기시감이 들지 않았다. 평범한 이사실에 매일 보던  그 풍경, 그 의자에 마치 언제까지나 제 자리라는 듯 편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있는 서인우, 턱 자리한 무언가의 거리감을 나타내주는 의자까지. 무언가 걸리는 구석이 있었지만 몸은 저절로 움직여 의자를 끌고 앉는다. 스윽 훑어본 서인우는 항상 보던 허리선이 곱게 떨어지는 정장을 입고 다시 책상 두드리기를 반복한다. 참나, 저게 뭐가 안 비싼거야. 책상 위로 보이는 허리께 밑에서 천천히 시선을 올리다 언뜻 마주친 두 눈을 피할 생각이 없어보인다.

 

“오늘 하루는 잘 보냈어요? 뭐 매일이야 똑같겠지만. 아, 밖에 날씨는 좋던가?”

“별로 안 추워요.”

 

 봄이 와서. 날이 선 목소리가 한층 가라앉는다. 잔잔하게 창문 밖으로 던진 시선은 곧 놀란 티를 감추지 못한 채 동그랗게 커진다. 분명 군데군데 덮여져 잘 안 보이고 흐릿한 구석은 있었다만, 햇빛이 거의 비추지 않고 반쯤 쳐진 블라인드 뒤로는 분명 눈이 내리고 있었다. 적당한 크기로 느릿하게 내려오면서. 아, 무언가 진짜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건 아는데···. 눈을 깜빡거려도 좀처럼 알 수 없이 자신을 휘두르는 기시감에 머뭇거리다가.

 

“언제부터··· 둘이 있는 자리가 이렇게 어색해 진 것 같아요?”

 

 이사, 아니. 인우씨는. 힘들게 말문을 열고 한다는 소리가 이거였나 싶어 잠시 후회가 머릿속을 스치긴 했지만 눈 앞에서 그저 눈동자를 데구르르 굴리는 서인우에 아예 의미가 없었던 질문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고. 창문 밖에는 여전히 눈이 내린다. 창문 안에서 둘 다 눈을 맞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였다.

 

“진짜 아무것도 기억을 못 하나봐. 아직. 빨리 생각해줘요. 내가 동식씨한테 무슨 나쁜 짓을 했는지.”

 

 그래야지 내 영원하고도 전능적인 구원이 되어 주지. 내가 죗값을 치르는 건 너여야하고, 그래야 네가 우는 이유가 모두 나일 테니까···. 눈이 녹듯이 흘러내린다. 구름 위에서 차곡히 쌓여가던 수증기들이 뚝 뚝 떨어지고 있었다. 눈은 우산으로 막더라도 곧 있으면 헝겁 아래로 흘러내리니까. 때때로 날씨가 지독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것처럼, 그럼에도 봄이 오면 모든 향기들이 시큼해지고 또다시 새로 온 꽃들에 젖는 것처럼, 그 질문, 평서문이 모든 것을 뒤바꾼다. 다물고 있던 감정이나, 차마 사랑이라고는 칭한 수 없는 비틀어진 망각의 이유나.

 

“기억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건데.”

 

 제 꿈에서라도 행복하고, 아무것도 모른 채 용서받고. 나중에 다 잊고 미워할 테니까··· 한 번만 그러면 안 돼요? 주먹쥔 손 안에서 바깥 검지가 엄지를 꾸욱 누르는 힘에 자각한다. 내가 또 지겠구나. 이번 꿈이 이토록 시려워 마음 속을 또 다시 헤집게 되더라도 안 깰 꿈이구나. 결국엔 두려워 잊게 될 꿈이지만 감히 미소짓기를 바라는 주제넘은 동정에 뒤덮인 표정이구나. 제 의지가 아니였지만 내리깔린 시선은 어디도 보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인다. 결국 약점을 내뱉어 버린 꼴은 가장 포악한 맹수에게 목을 스스로 내쥐어 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맹수가 자신을 물어뜯지 않아도, 안에서 곪아 끙끙 앓을 상처를 굳이 앞에 내세워버린 꼴이다. 

 표정이 꽤 가관이다. 아래를 보고 있었음에도 인기척으로 느껴지는 변화가 더 아프게 다가왔다. 꽁꽁 싸매려던 진실을 결국엔 털어놓고 말았으니. 둘은 그 상태로 가만히 앉아서, 서로에게 자신은 어떤 의의였는지, 방금 내뱉은 그 말은 어떤 방패막이였는지 생각한다. 느리게 말문을 연다. 자동스럽게 시곗 바늘이 끝을 가리키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다. 서인우는 느리게 제 넥타이에다 손을 가져가 댄다. 검지로 단정하게 맨 제 넥타이를 정장 밖으로 조심스럽게 빼낸다. 목이 턱 막히는 듯한 기분이지만 서로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동식씨, 내 행복은 동식씨 의무가 아니에요. ···모두에게 똑같다는 듯 날 취급하면 기분이 나쁘거든.”

 

 

Day 002.

 


 

“동식씨, 내 말 듣고 있어요?”

“아, 네! 죄송해요, 그. 조금 피곤해서요.”

 

 이 생활 패턴을 어떻게 좀 해야 될텐데. 그죠? 어색한 듯 조금 전에 정신 차린 그 눈을 동그랗게 떠 보인다. 주말, 이른 시각, 한적한 카페 안. 두 사람 앞에 가지런히 놓여진 음료수들에 시선을 옮겨가며 날카롭게 의심하는 듯한 눈빛을 피한다. 톡, 톡. 자신의 자몽 에이드에 얼음이 동동 떠있는 것을 무심히 지켜보다가 추론하는 듯한 시선이 거두어 질 때 쯤에야 눈을 마주친다. 

 

“하아···. 내 말 제대로 들은 거 맞죠? 또 다시 말하기 힘든데.”

“아, 못들었다.”

 

또 어떤 사건이 발생해서 제 도움이 필요한가? 그냥 요약해서 말해주면 안돼요? 저 진짜 잠깐 졸려서 그런건데. 이번에는 무언가를 바란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고개를 살짝 숙여 빨대를 입에 앙 문다. 서늘하게 속을 꽉 채우는 에이드의 느낌이 맘에 들어서 장난스럽게 계속 빨대를 물고 있는다. 안 그래도 서늘한 날씨에, 간만의 휴가에, 집에 가서 이불만 덮고 할 게 없으면 공포 영화나 보고. 그런 생각에 신나 잠시 상대방의 감정 탐색을 멈추고 무언가 복잡한 기분이 심보경의 옆에 둥둥 떠다니는 것도 모른 채 혼자서 실실거리는 웃음을 꽁꽁 숨기기도 바쁜 그 때에.

 

“서인우가, 아프대요.”

 

 네? 쿵, 쿵, 쿵. 심장이 다시 빠른 속도로 움직이 시작한다. 가로막히고 있던 그 때의 기억과 지금의 평범한 일상의 경계를 단숨에 무너뜨려버린, 그 세 글 자가 형상이 되어 탁자 사이를 둥둥 떠다니고 있을 때에서야, 한 번 내뱉은 그 글자들이 바스라져 이젠 껌껌한 침묵이 모든 것을 휘어잡았을 그 때에서야 모든 말 뜻의 의미가 정확히 해석이 된다. 3년동안 정말 지독하게 외면한, 아직도 잊지 못한 그 의미에 자동스럽게 온 신경을 건드리고 머린가 지끈거린다. 원래 그게 이렇게 큰 의미였나. 망각이 원래 이렇게 큰 죄였던가. 인정하기도 싫은 지독한 슬픔이 한순간에 온 세상을 덮어버린다. 자, 잠시만요. 아직도 잠이 덜 깼나보네. 의자에서 일어나 책상을 턱 붙붙잡는 손이 떨렸음에도 심보경은 그저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고 부축해준다. 우리 나가서 얘기할까요? 남은 채로 병에 가득 담겨 있는 에이드가 천지의 빛을 머금으며 부드럽게 일렁인다. 병 밖에 있는 사람도 그렇게 흔들릴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

 

“나 혼자 갈게요, 그럼.”

 

 나는 그 사람이 지옥의 죗값을 치르고 있는지 톡톡히 봐야겠으니까. 게다가 난 경찰이라서 비위도 안 약하고, 그래요. 심보경이 애써 해주는 위로의 말에 걱정이 사그라들긴 했지만, 텁텁히 심장을 가득 메운 의문 한 가지는 그것이였다. 난 왜 아직도, 그 사람에게 슬픔을 느끼고 있는가. 그게 왜 아직도 그 사람을 향한 동정이 아니라 내 스스로가 온전히 겪고 있는 슬픔일까. 그래도 더 이상 폐를 끼치고 언제까지나 붙잡고 있기도 미안하니까, 최대한 정상적이게 고개를 끄덕인다.

 

“네, 알겠어요. 그냥 가요. 난 여기 있을래.”

 

 내 걱정은 안 해도 괜찮아요. 그렇다고 순순히 보내줄 심보경이 아니였지만, 지금은 우리도 서로를 외면하기로 한다. 손을 흔든 채 둘 다 웃음을 지어 보내고 시선 끝자락에 머물다 사라지자, 웃기게도 가장 먼저 몰려온 건 후회였다. 그냥 가서 얼굴을 보고 올 걸. 걸음 걸음마다 짙게 뭍어난 후회가 몇 번이나 걸음을 되돌렸다. 병동이 어딘지는 문자 메세지를 찾아보면 나올 것 같았지만, 찾아가게 되어도 그 얼굴을 마주하게 될 자신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두 얼굴을 마주하는 것 따위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숨겨둔 기억의 주특기는 변환이니까. 혹시라도 이 기억이, 이 슬픔의 감정이 다른 것으로 자칫 변해버린다면. 똑똑 노크를 한 봄이 벌써 온 날씨를 걸으며, 봄 바람을 바보같게도 맞으며 생각한다. 육동식은 어릴 때부터 봄에 피는 꽃을 사랑했다. 하지만 그게 봄 자체를 포용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였다. 그런데도 겨울이 지나고 그 혹독함을 잊어 추위를 견딘 기억을 무용담처럼 자신의 가치관에 맞추어 떠벌릴 때에 자만스럽게도 봄은 온다. 그렇다면 사람이 할 짓은 지금까지 했던 것들을 모두 잊고 나아가는 것이다. 옷갖 거창한 이유를 댔지만, 진실은 육동식은 지금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또 처절했던 한 꽃을 잊으러 가야 한다는 것이다.

 

Daydream. ?

 

 


 

 병원은 언제나 한산하고 모든 움직임이 조용했다. 꿈인지 아닌지 분간도 가지 않을 정도로. 그 속을 걸어가는 발걸음조차 퍽 조심스러워질 정도로. 머릿 속에선 몇번이나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었다. 만나면 어떤 말을 해야할지, 아픈 건 또 얼마나 아픈 건지. 정말 별 것도 아닌 병문안 하나였지만 빙빙 돌고둘아 3년간의 공백을 치우는 시간이였다. 아무런 틈도 보여주어선 안된다고 생각하며  문에 손을 대는 순간에도 가슴은 제멋대로 쿵쿵거린다. 할 수 있어, 육동식. 소리를 최대한으로 낮춰가며 문을 열곤 빼꼼 내밀었다.

 서인우가 그 자리에 있었다.

 어? 반사적으로 문 뒤로 서둘러 숨는다. 아직까지도 빠른 심장소리가 혹시나 저기가지 들릴까 손으로 입을 텁 막는다. 핑핑 돌아가기 시작하는 머리가 상황을 인지한다. 서인우가 병실 안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침실 위에 앉아있었다. 호흡기도 뗀 채로. 아, 뭐가 잘못되었는데, 그게 뭔지 통 모르겠다. 등줄기 위로 서늘한 기분이 스친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대리석 위를 슬리퍼로 밟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나 죽나? 아니, 서인우가 날 죽일 선택을 할 건가? 

 

“동식씨, 일단 이리 와서 앉지?”

 

 어디서 들어본 대사···. 둘 사이가 남짓 1m일 때에, 한참을 벽 뒤에서 고민하다 결국은 다시 얼굴을 내밀고 익숙치 않다는 듯 방 안을 둘러본다. 온갖 장치와 기계, 손에 달려있는 이상한 의료기구. 그날 와서 본 것과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조황색 조명이 반짝이는 것 하며 탁자 위에 조그만히 세워져 있는 가습기가 내뿜는 습기가 이 방을 꽉 적막으로 채우는 것 까지조차도. 고민하다 재빨리 눈이 마주치기 전에 손에 꼬옥 들고 있던 가방을 책상 위에 툭 내려논다.

 

“그, 물론, 진짜 아무 의미도 없는데요. 꽃이에요.”

 

 봄에 피는 꽃. 이제 진짜로 봄이 왔으니까 곧 피고, 여름이 되면 지고. 아, 그, 꽃 이름은 스노우드롭이구, 꽃말은 희망. 저는 이ㅅ, 아니 인우씨가 깨어 있을지도 몰랐고, 그냥 두고만 가려고 했는데···. 베베 꼬인 말들이 영락없이 당황스러움을 나타낸다. 뭉게뭉게 피는 연기들이 가습기에서 나와 일정 선까지 이어지다가 뚝 그친다. 잔잔하게 받춰주는 부담이 가지 않는 시선이 얼굴을 달아 오르게 만든다. 화분을 상자 안에서 꺼낸 뒤, 가만히 그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원래는, 일주일에 한 번씩 물을 주려 오려고 했는데.”

 

 그리고 꽃이 지는 계절이 되면 그만 오려고 했는데. 꽃이 지면 잊으려고 했는데. 이젠 그럴 필요도 없겠다. 뒷 말을 목 뒤로 삼킨다. 언젠가 맛본 적 있는 씁쓸한 맛이 온 몸을 휘어잡는다.

 

“고마워요. 근데 우리 더 이상 보지 말자. 나 이제 괜찮으니까 찾아오지 말고, 아플 때 빼곤 병원에 오지도 말고. 왠만하면 아프지도 말아요. 이해했어?”

“···네? 아니, 뭐라구요?”

“알잖아요, 동식씨는 내 죄악 중에 유일하게  살아 숨쉬는 가장 지독한 죄악이라고.”

 

 그리고요, 이 꽃. 부드러운 손길이 하얀색 꽃들을 살짝 쓸어내렸다. 꽂말 그거 아니에요. 나한텐 이래. 당신의 죽음을 기원한다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동식씨가 준 희망은 나한테 와서 죽음이 된다는 뜻이고. 가만히 마주친 두 시선이 엉킨다. 지독하게 연막하려던 감정의 부산물이 결국엔 모여 벽이 되버리고 만다. 또 다시, 몇번째인지 모를 악몽같은 적막이 서로의 생각을 켜켜히 들춘다. 

 

“그게 말처럼 쉽게 가능해요? 인우씨는 그게 그렇게 쉽게 될 거라 생각해요?”

“···나 사랑해요?”

 

 이제 그만해요, 사랑. 혹시라도 날 사랑하는 동식씨의 조각이 있으면, 그냥 그 채로 잘라내요. 담담하게 뱉어버린 진심들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가만히 걸터앉아 있는 서인우에 무언가의 울컥함도 자리했다. 난 심장 속에 있는 꽃을 뱉어내는 게 그렇게 힘들던데, 생각보다 당신에겐 쉬운 것이였구나. 한편으론 현실이 아릿하게 제게 다가오는 게 느껴져 볼품없이 눈 끝에 방울들이 달린다. 거짓말을 할 거면 끝까지 모두를 속이던가, 사실을 숨길 거면 끝까지 아니라고 잡아 떼던가. 눈에 뻔히 보이는 슬픔이 자꾸 속을 긁는다. 우리의 마지막 이별이 이런 것이 되야만 한다는 게 자꾸만 마음을 잡아끈다. 끝까지 서로에게 거짓발린 말들만 하며 배려라는 이유로 마음을 무시하는 짓거리들에 지쳤다.

 

“그게 됐으면 3년 전에 이미 끝났겠죠.”

 

 애초에 병실에서 두 눈을 마주보며 이런 얘길 하지  않아도 괜찮았었겠죠. 진짜 현실의 감각이 자신을 끌여들이고 있다. 어서 이 악몽, 아니 백일몽에서 깨라고. 시선은 이제 그 꽃으로 향한다. 만약 내가 당신에게 건낸 희망조차도 죽음을 부르는 것이라면···. 

 

“네, 맞아요. 사랑해요 인우씨. 그러니까 그 나락 끝까지 같이 가요. 우리 꽃은 같이 피웠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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