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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절세미인, 거짓말
W. 돌박이

1.

 아, 바람이 분다. 

 

 그 바람은 사람 하나 없는 내천 뚝방길 위, 그러니까 4차선 도로와 물 흐르는 내천 사이의 기로에 선 보경을 눈치없이 파고든다.

 


 

 언니, 나한테 왜 그랬어.

 


 

 새까맣게 속이 보이지 않는 총구가 단단히 유진에게 겨누어진다. 보경은 손금 사이사이로 난 땀 때문에 혹여나 총을 놓치기라도 할까 싶어 총대를 다시 한 번 그러잡았다. 유진은 그럼에도 별 반응이 없었다. 보경의 혈액성분 하나하나까지 다 꿰뚫어보고 있는 듯한 저 눈빛엔, 네가 날 쏠 수 있을까 묻는 방자함만이 자글거렸다. 보경은 침을 꿀꺽 삼켜넘기며 각 글자에 힘을 실어 다시 물었다. 나 갖고 노니까 재밌었어?

 

 타액마냥 길게 늘어지는 침묵은 처음 보경과 유진이 혀를 섞은 날과는 비슷한 듯 다른 종이었다. 맥박의 떨림이 공존한다는 점에서 같았으나 당시엔 사랑, 현재는 적대의 날 위에 서있다는 점에선 달랐다. 유진은 그 침묵이 흥미롭다는 듯 김빠진 웃음을 지었다. 현묵이 깨졌다. 그녀는 어정쩡하게 허공을 방황하던 양손을 위로 들어올리고 긴장이 역력한 표정을 180도 바꾸었다. 아직 어린가봐, 넌. 그것이 보경을 자극하려 한 말인지, 혹은 또 다른 의미에서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보경은 그런 그녀의 얼굴을 한참이나 눈에 담아보았다. 파들파들 떨리던 손끝에 힘이 들어간다. 뜨거워진 발바닥을 동동 구르고 싶었으나 10년 형사 생활동안 내재된 감들이 말하고 있었다. 약간의 흐트러짐이 곧 생사를 결정하는 연유가 될 거라고. 보경의 눈이 빨갛게 충혈되었다. 더 이상 유진의 모습을 담아두기 힘들다며 몸이 거부반응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리라. 보경은 눈을 질끈 감았다. 동시에 탕, 소리가 뚝방길을 빠르게 달렸다. 보경의 눈에서도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그에 맞춰 바람이 무리를 지어 몰려온다.


 

 넘어지는 유진의 머리 위로 3월의 이른 벚꽃잎이 떨어지고 있었다.



 

2.

 

 유진과의 첫 만남은 특별하다 해야할지 평범하다 해야할지 요연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확실한 것은 유진과 만난 그 날은 운명적인 날이라는 것이었다. 경찰로서의 자질을 어릴 적부터 항시 검토해오던 내가 길 가다 칠칠치 못하게 지갑을 떨어뜨릴 일은 얼마나 되겠는가.

 

 

 저기요, 이거 떨어졌는데요.

 

 

 처음엔 '저기'란 지칭어가 날 향하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러나 옆에 걸어가던 택수가 선배님 부르는 것 같은데요? 라 물어 뒤를 돌아본 데에 유진이 있었다. 그것이 그녀와의 첫 만남이었고, 얼굴을 마주한 순간 주변의 모든 것들이 슬로우모션처럼 흐르기 시작했다. 어, 대체 왜 이러지. 뜨거운 불꽃이 이는 눈과 앵두마냥 붉은 기가 도는 입술이 한 공간에 모여있는 게 단연 어울리지 않았음에도 충분히 조화로운 얼굴이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매료될 듯, 그러니까 한 마디로 절세미인이었다. 다만 새하얀 피부에 약간의 방어기제가 깃들어있는 걸 보면 평소에도 의심 많은 직종에서 일하고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했다. 마치, 나처럼.

 

 그녀는 곧게 뻗은 손으로 지갑을 건네주었다. 그것을 받아드는 순간 묘한 장력을 느껴졌다. 그녀에게 끌려다니게 될 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기분마저 맴돌았다. 그게 감사합니다, 라는 형식적인 인사 뒤에 그런데 혹시 전화번호 좀 알 수 있을까요, 라는 의뭉한 속셈을 덧붙인 이유였다. 그녀는 그 말에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곤 곧 피식 웃었다. 제가 먼저 물어보려고 했는데 선수 치셨네요.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알았다. 이럴 때도 하늘과 땅이 뒤집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구나, 하는 걸. 집에 돌아가서 그녀에게 첫 문자를 받았을 때도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 내일 뭐해요? >

 

 그 이후로 우리는 시간이 될 때마다 만났다. '거의 매일 같이'. 처음엔 고양이마냥 꼬리 부근이 올라간 눈 때문에 조금은 무서운 사람이 아닐까 싶었는데 곧 다정한 말들과 깊은 생각이 베어있는 행동들에 긴장감도 눈 녹듯 녹아내렸다. 그녀와 함께 만난 후로 시간은 애석하게도 빠르게 흘렀다. 커피 한 잔, 맥주 한 잔을 나누는 시간은 솜사탕처럼 달았지만 그만큼 빠르게 사라졌다. 그래도 괜찮았다. 우리에게 시간은 많으니까. 그러다 한 달이 지나면서 차츰 유진은 내 일터까지 침범하기 시작했다. 말이 침범이지 결코 기분 나쁜 참견은 아니었다. 신발 벗고 들어와요. 편하게 앉아있어요. 차 좀 줄까요? 유진이 한 발자국씩 속을 파고 들 때마다 내가 보인 반응은 환영. 유진은 절대 난동부리지 않았다. 내가 일을 마칠 때까지 제자리에서 기품있게 차를 마셨다. 혹여나 내가 바빠져 뽀뽀만 해주고 돌아선다 해도 내일 보자며 웃어준 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니까, 심보경 인생 처음으로 숨만 쉬어도 행복한 사람을 만났다. 

 

 택수는 그런 내가 마냥 부럽다는 듯 푹푹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요?

 

 아무렴.

 

 

 문득 거울을 내려다봤을 때, 내 얼굴엔 생글생글 미소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 서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선배, 그분 왔는데요. 라는 택수의 호들갑이 들렸다. 반짝이는 눈으로 창문 너머를 바라본다. 유진이 정장차림으로 경찰서 밖을 어슬렁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밖에 추울 텐데 옷이 얇다. 평소 다리에 깔고 일하는 담요를 들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절로 입가에 호선을 그려졌다. 역시나 변함없이 그녀가 저를 보며 웃어준다. 보경아. 

 

 처음엔 심보경 씨, 다음은 보경 씨, 그리고 지금은 보경아. 나는 유진의 가슴팍에 담요를 건네는 동시에 그 위로 얼굴을 묻었다. 달달한 듯 시니컬한 향이 기분 좋게 주위를 공전했다. 유진은 상당히 놀란 눈으로 잠시 날 내려다보더니 곧 눈가를 휘어접으며 제 품에서 떼어내 잠시 시선을 맞췄다. 그녀의 눈에서 생각을 읽어내기도 전에 금세 입을 포개오기는 했지만. 나는 자연스럽게 유진의 허리에 손을 둘렀다. 평소 같았으면 공공장소 음란죄에 해당된다며 허리를 찔렀겠지만, 주인공이 우리인 이상 그런 법도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유진과의 첫 키스는 달콤했다. 뒤끝이 조금 씁쓸하긴 했는데, 아 뭐 그러려니 했다.




 

3.

 

 "야, 큰 사건 하나 들어왔을 거다. 사건 보고서 정리해서 너희 앞으로 하나씩 돌렸으니까 오늘 밤까지 확인해. 10시에 회의 시작한다."

 

 

 자리에 털썩 앉으며 뒷머리를 헝클였다. 이 시국에 또 사건이라니. 이미 맡고 있는 사건만 최소 3건이 넘었다. 심지어 큰 사건? 평소 참을성을 인두장으로 새겨놓은 것처럼 굴던 택수마저도 이 이상은 힘들었는지 의자에 늘어져있었다. 또 을마나 크으은 사건이시길래 이렇게 우리를 부려먹는 거래요. 그는 의자를 한 바퀴 뱅 돌리면서 그런 투덜거림까지도 거리낌없이 내뱉었다.

 

 나 역시 다르진 않았다. 선배가 보여야하는 모범은 무슨. 의자와 한 몸이 되어 이 세상에서 당장 꺼지고 싶다는 생각을 가만히 곱씹고 있었다. 유진언니도 며칠 못 봤는데. 말간 흰색 얼굴이 눈앞을 아른거린다. 그 얼굴을 잡으려 손을 뻗으면 멀어지고, 몸까지 일으켜 다가가면 더 멀어진다. 그래서인지 무심코 본 핸드폰 액정 위로 유진의 이름이 찍혀있는 것도 환상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벨소리가 그 여념을 파고 들자 머릿속에서 번뜩 유진의 목소리가 울렸다.

 

 

 보경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폰이 울리고 있었다. 수신자가 진짜 유진언니였다. 창문 밖을 내다보니 저 멀리 그녀의 뒷머리가 찰랑이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5시 반. 아직 내가 일할 시간임을 알면서도 왔다는 건. 나는 열어보려던 서류를 꾹 눌러닫고 바로 밖으로 뛰어나왔다. 처음엔 어디 가세요? 묻던 택수도 이젠 그러려니 붙잡지 않았다. 경찰서 문을 열자 시원한 바람에 속이 탁 트였다. 나는 냅다 달려 단숨에 유진의 앞에 도달했다. 얼마나 빠르게 뛰어왔으면 색색 입에서 쉰소리가 다 나온다.


 

 어쩐 일이야?

 

 일이 일찍 끝나서. 잠깐 들렀어.

 

 보고 싶었어.

 

 나도.


 

 유진은 빠르게 달려오느라 흐트러진 내 앞머리를 차분히 정리해주었다. 기분 좋은 간질거림이 얼굴 전체를 쓸고 도망간다. '도망간다.'라는 말이 어울리려나 싶은 생각이 잠깐 들긴 했지만. 

 

 경찰서 외등이 깜빡거렸다. 저번부터 갈아야겠다 생각은 했는데, 유진이 가고 나면 등부터 갈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에 잠깐 정신이 팔려 예상치 못하게 제 몸을 안아오는 넉넉한 품과 손바닥 사이를 파고 들어오는 유진의 손에 흠칫 몸을 떨었다. 잠깐만 이러고 있자. 유진이 작게 속삭였다. 품이 따뜻하다. 긴 머리칼은 평소처럼 뺨을 간질인다. 일할 때는 하나로 올려잡아 묶는 탓인지 생머리의 중앙에 머리끈에 의해 움푹 패여있는 구간이 있었다. 나는 그녀의 그 뒷머리를 양손으로 포개어 쓰다듬어주었다. 분명 서로의 키 차이 때문에 내가 안겨있는 꼴이 되어야 할 터였지만 어째서인지 그날따라 유진이 나에게 안겨있는 꼴처럼 보였다.

 

 그리고 유진이 몸을 떼어냈을 때, 여전히 손에 이물감이 남아있었다. 뭐지. 촉감으로나마 느껴보자면, 종이 쪽지 같기도 하고. 무심코 내용물을 확인하려하면 유진이 제재했다. 의아한 눈을 그녀와 맞추자 어쩐지 평소답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라진 건 하나 없는데, 어째서. 남이 볼 땐 별 차이를 못 느낄만한 떨림이 둘 사이를 방황하고 있었다. 유진은 어떤 일을 하든 티를 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차분했고, 때로는 속을 알 수 없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데. 무언의 압박이 느껴졌다. 아무 말도 하지마. 그냥 들어가서 쪽지만 보는 거야. 그녀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무심결에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유진은 그제야 안심된다는 듯 살짝 웃으면서 입술만 움직여 소리없이 말했다.


 

 나 갈게. 사랑해.


 

 다시 한 번 외등이 깜빡인다. 깜빡. 유진이 멀어졌다. 또 깜빡. 조금 더 멀어졌다. 그녀를 잡으려 손을 뻗으면 멀어지고, 몸을 움직이면 더 멀어진다. 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걸까. 지금도 보고 있고, 내일도 볼 수 있고, 다음 주에도 볼 수 있는 사람인데. 유진이 시야에서 아예 사라지고 나서야 그녀가 얼굴을 묻었던 어깨가 조금 축축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착각이었을까. 슬슬 날이 따뜻해져가니까. 

 

 유진의 뒷모습이 아예 점이 되어 사라지고 나서야 뒤돌아 서로 들어섰다. 어둠의 그림자가 쫄래쫄래 날 따라왔다. 그림자를 밀어내고자 발을 버둥거려봤지만 그 요물은 떨어질 줄을 몰랐다. 가슴께가 조금 답답해졌다. 아까 유진이 눈으로 한 이야기는 무엇일까. 아, 아니다. 생각하지 말자. 유진에게서 느꼈던 그 체취만 생각하는 거다. 달콤하고, 또 달콤하고 달콤하다가 끝이 씁쓸해지는 그 냄새. 그럼에도 나는 서 사무실로 들어설 때까지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상태였다.

 

 이럴 땐 보통 택수도 저를 건드리지 않는 법인데, 어째서인지 보경을 발견하자마자 그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선배! 뭔데 저렇게 호들갑이람. 꼬리 흔드는 대형견 같은 모습에 머리가 지끈 아파왔다. 왜. 허락의 의미를 담은 질문이 떨어지자 택수는 아까 새로운 사건이랍시고 받은 파일을 눈앞으로 들이밀었다. 이 사람요! 선배님이랑 맨날 만나는 그분 맞죠?

 


 

 눈을 의심했다. 

 

 이게 뭐야.

 

 진짜, 이게 뭐냐고.

 


 

 <청부살인업자 소탕작전> 따위의 유치한 이름 아래 익숙한 얼굴 하나가 사진으로 떡하니 박혀있었다. 어쩌면 방금까지 마주하고 온 그 얼굴이었다. 이분 맞잖아요. 선배님이랑 만나는- 나는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나불거리는 택수의 입을 재빨리 막았다. 목소리가 크진 않았고 주위의 다른 놈들은 제 일에 눈도 귀도 멀어있는 것 같긴 했지만, 혹시 모르니까. 택수는 놀란 눈으로 날 내려다본다. 자기도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짓는데, 그거 내가 지어야 할 표정이거든. 

 

 나는 꽉 쥐어진 손을 폈다. 아니나 다를까, 곱게 접힌 종이 쪽지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4.

 

 

 

 다시 현실.

 

 후들거리는 보경의 손이 총을 놓쳤다. 동시에 바닥에 꿇은 무릎에서 흙먼지가 날렸다. 주변에 벌써부터 까맣게 시든 벚꽃잎이 이리저리 흩어져있었다. 그 위로 새빨간 피를 흘린 유진이 쓰러져있었다. 보경은 그녀에게서 눈을 돌렸다. 그리고 말라가는 입술을 겨우 떼어내며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무전기를 꺼냈다. 보경의 떨리는 목소리가 지지직거리며 무전기 안으로 스며들었다. 

 

 

 심보경 사건 완료됐습니다. 제가 현장처리하겠습니다. 

 


 

 보경은 눈을 감았다. 살인청부업자라. 그런 게 정말 있을 거라곤 상상도 해본 적 없었다. 게다가 보경을 포함한 다른 형사들에게 '총 네 명의 킬러들이 있다. 그들을 살려서 데려오지 마라. 죽이는 거다.'라는 섬뜩한 명령마저 떨어졌다. 그러자 왜 그들을 죽여야 하는 거냐며 눈치없는 누군가가 물었다. 

 

 

 "경찰들을 죽이려고 했었으니까."

 

 보경은 자신이 듣고 있는 말들이 되게 비현실적이라 생각했다. 그러니까, 킬러들을 키우는 에이전트에 누군가 거액의 돈을 뿌렸고 킬러가 움직였다는 이야기다. 그들의 타겟은 네 명의 경찰. 김정수, 서은주, 정상민, 그리고 심보경. 왜? 재벌의 뒤를 캐고 있었기 때문에. 보경은 넷이서 몰래 진행 중이었던 재벌 비리에 관련된 자료들을 떠올렸다. 보경은 그러게 왜 시키지도 않는 짓을 했냐는 듯 첨예한 눈초리를 잔뜩 받으며 화면 위로 떠있는 킬러들의 얼굴을 마주했다. 화면엔 가장 익숙한, 보경이 가장 사랑했던 그 여자의 얼굴도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타겟은...


 

 <내 타겟이 너였어, 보경아.>


 

 보경은 회의 후 확인한 종이쪽지를 바지에 구겨넣었다. 그리고 제자리로 돌아가 한참이나 생각에 빠졌다. 




 

5.

 

 촤아아- 시원한 뱃소리가 파도를 가른다. 그 배 갑판 위에 챙 넓은 모자를 쓴 보경이 수평선 저 너머를 응시하며 가만히 서있었다. 그 오밀조밀한 입술을 벌려 숨을 들이키면 짠내 가득한 바닷바람이 혓바닥을 간질였다. 기분 좋아. 속으로 든 생각을 무심코 입밖으로 내뱉으면 그에 옆에 있는 여자가 동의의 의미를 담은 고개를 끄덕인다. 

 

 

 조유진.

 

 유진언니.

 

 그렇게 두 번 부르면 왜, 담백한 듯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옆태 진짜 예술이네, 이 언니. 입을 다물었는데도 여전히 혓바닥이 간질거린다. 보경은 씨익 웃다가 유진의 옷깃을 끌어당겨 그대로 입술을 맞췄다. 그녀는 깜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떠보였으나 곧 눈을 감고 보경의 허리를 감아왔다. 달콤하고, 달콤하고, 또 달콤하다가 마지막이 씁쓸한, 아니 이젠 조금 짭짤한 맛이다. 보경이 입을 떼면 조금 아쉽다는 듯 눈을 내리까는 유진이 있었다. 보경은 짧게 웃으며 말했다. 시체부터 치우고 마저 하자. 그리고 유진의 왼쪽 뺨에 보일듯 말듯 찍혀있는 빨간색 피를 엄지손가락으로 스윽 닦아주었다. 유진은 그 길로 신체부위 어딘가 하나씩 꺾인 채 널부러져있는 남자들을 바다로 빠뜨리기 시작했다. 보경은 숨을 내뱉으며 종이쪽지의 내용을 다시금 상기했다.

 유진의 종이쪽지를 본 후 의자에 앉아 한참이나 빙글빙글 돌던 보경은 씨익 웃었다. 거기엔 팀장님께선, 서장님께선 말씀해주시지 않은 내용이 상당히 많이 적혀있었다. 요약해보자면 이러하다.

 

 하나, 유진은 에이전트의 가장 '꼬리'다. 실제 재벌들과 경찰들은 살인청부업자는 많이 사용한다. 아마 타경찰들을 눈속임하기 위해 '꼬리'만 잘라내려하고 있다.

 둘, 유진이 죽더라도 재벌 측에선 어떤 방식으로든 다시 보경을 죽이려들 것이다. 그땐 경찰도 보경의 죽음을 숨기려할 것이다.

 

 셋, 내 타겟은 너였어, 보경아.

 넷, 그래도 사랑해.


 

 "응, 나도 사랑해."

 

 

 보경이 작게 중얼거리며 유진을 바라보았다. 저런 사람이 킬러였다고. 솔직히 아직도 믿기진 않았다. 분명 몇 분 전까지 이 배 위에서 까만 정장을 입은 남정네들의 목을 그어버리는 걸 보고 있었는데도. 보경은 방금 막 마지막 남자의 몸을 바다에 던져버린 유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의 팔에 난 상처에 짧게 키스해주었다. 벚꽃이 내리던 일주일 전 그날, 보경이 쏜 총에 맞은 부위였다. 그녀가 말했다. 괜찮다고. 정말 괜찮은 건지, 보경을 안심시키려 그러는 건지, 하지만 속상해도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해주려는 건지, 그것까진 잘 모르겠지만.

 

 다섯, 나한테 도청장치가 붙어있어. 아마 내가 죽고 나서야 그 연결을 끊을 거야. 근데 걔네 총질만 몇 년한 사람들이라 내가 총에 맞았는지 빗겨갔는지 정도는 소리만 들어도 알거든. 그러니까 내 팔을 맞춰줘. 바닥에 쓰러져있을 테니까 너도 사건현장 처리한다고 말하고 바로 도망가자, 둘이.

 

 여섯, 물론 한 1년 간은 끊임없이 누군가 우리를 죽이려들 거야. 그래도 괜찮다면 같이 가고 싶어.




 

7.

 

 "근데 언니, 솔직하게 말해봐. 혹시 나한테 숨긴 거 또 있어?"

 

  유진은 골똘하게 생각하는 듯했다. 아. 그러다 내뱉은 탄성은 무언가 숨겼다는 반증이 되어 둥실 떠올랐다. 보경은 그게 뭐냐는 재촉하는 눈빛으로 유진을 올려보았다. 그녀는 혀로 아랫입술을 한 번 쓸더니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주워준 그 지갑, 사실 너가 흘린 게 아니라 내가 훔친 거였어. 너무 예뻐서 말 걸고 싶었는데, 그게 내 타겟일 줄은 몰랐지.




8. 

 

 우연이라 생각했는데,

 

 필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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