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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이기는 사랑
W. 물만두

나를 거두어 준 것은 서인우였다. 내 보스이자, 아버지와 같았던 사람- 아버지라고 부르기에는 낯이 뜨거워 아저씨라 불렀던- 나는 7살때부터 조직 뒷골목에서 자랐다. 부모 없이 버려진 나를 거두었던 서인우가 아마 그때 20살 쯤 되었을 거다. 

그러고 난 뒤로도  십 몇 년이 지났다. 그는 이제야 30살 중반에 다다른 나이지만 그에게는 갓 성인이 된 아들이 있었다. 아무도 아들이라고, 또는 아버지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웃긴게 하나 있었다. 나는 그를 사랑했다. 아버지나 그런 정으로 인한 것이 아닌, 진짜 흔히 말하는 좋아한다, 사랑한다,와 같은 감정이었다. 그 또한 나를 잘 대해 주었기에- 그저 자신이 거두어들인 아들 같은 존재가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 어떻게 본다면 연인과 유사한 위치로 말이다. 따지고 보면 그는 내가 우는 것 보다 웃는 것을 좋아해 주었고, 내가 죽는 꼴은 보기 싫다며 총을 다루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고, 나를 따스하게 끌어안아 주었으니까. 남들이 말하기에는 그저 그런 행동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그것들은 나에게 엄청난 의미로 다가왔다.





 

조직에서 계속 머무르려면 해야 하는 것이 딱 하나 있다. 회장의 명령을 이행하는 것. 중간보스도 아닌 최종 보스를 조직 사람들은 회장님이라고 불렀다. 딱히 다른 의미는 없었다. 그냥 돈이 많고, 대장이니까. 회장은 가끔 제 방으로 사람들을 불러 명령을 내린다. 오늘은 누구를 죽여달라, 누구를 병신으로 만들어 달라, 하는. 잔혹하기 짝이 없는 명령들이 대다수이지만 이걸 지키지 않으면 제 목이 날아간다. 또는 내가 아끼던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거의 그의 명령을 피하는 것은 불가피했다. 내가 십여 년 동안 조직에게서 키워졌던 동안 명령을 이행하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거의 100퍼센트의 확률로 조직원들은 회장의 지시에 따라 그가 원하는 것을 바쳐왔다. 누군가의 목, 누군가의 손가락, 같은 살인의 증표를 말이다. 나도 어렸을 때는 언젠가 나도 저러한 명령을 받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들처럼 회장에게 인정받고, 반대로 회장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야, 육동식. 오늘 회장님이 너 부르셔. 가 봐.”
 

“오늘이면 너 꼬맹이는 아니겠다, 안그래?”

 

A는 내 엉덩이를 툭툭치며 히죽히죽 웃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오늘 내가 회장님께 명령을 받을거라고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회장님이 ‘나 혼자만’ 부른 거니까. 



 

“저 왔습니다.”

 


 

비싸게 생긴 문을 두어 번 두드리며 말했다. 회장은 흡족한 목소리로 들어오라는 말을 남기고그는 입에 시가를 베어 물었다.

 


 

“동식아, 내가 너 아끼는 거 알지? 그래서 내가 너한테 일감도 늦게 줬잖니. 험악한 모습 보지 말라고.”


 

회장의 서론이 길어졌다. 예스맨처럼 긍정만을 반복하던 내 입이 점점 피로해짐을 느꼈다. 그가 창밖에 대고 시가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매캐한 연기가 창문으로 다 빠져나가지 못하고 방 안에 조금 맴돌았다. 저절로 목에서는 콜록거리는 소리가 올라왔다. 허나, 꾹 참고는 그의 입이 요란하게 움직이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래서도 그런데, 오늘은 너한테 임무를 줘야 할 거 같다.”


 

심장이 빠르게 요동쳤다. 동경하던 그 일을 이제야 맡을 수 있다는 희열감에, 모자란 어린아이가 아닌 이제야 진정한 일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생각에.



 

“서인우, 목이 갖고 싶구나.”






 

그는 해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 귀에 정확히 이름 석 자가 파고들었다. 서인우, 서인우가 누구인가, 내가 여기까지 살아있게 해준 장본인이었다. 게다가 한 술 더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이 운명이 웃기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계속 웃기만 하였다. 그러다가 이내 표정을 확 굳히고서는, 냉정하게 말했다.


 

“요즘 정보가 자꾸 빠져나간단 말이야, 저번 일만 해도 그렇고. 아마 서인우 그 작자 일인 거 같은데. 내가 또 서인우 아낀다지만 이건 우리 모두의 목숨이 달려있잖아.”
 

“그는 우리 배신자야, 알겠지? 나는 동식이가 현명한 판단을 내릴거라고 믿는다.”

 

내 어깨를 두어번 부드럽게 쓸고는 나가보라며 손짓하였다.









 

자신을 키워준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전에 나는 누가 나에게 그 일을 시켰는지 자각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회장, 이곳에서 그의 말이면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누구를 죽이든 간에 그의 허락만으로 모든 것이 정당화 되는 곳임을 상기시켜야 했다.


 

동식은 제 품에 오랫동안 숨겨놓은 리볼버를 꺼냈다. 서인우가 저에게 총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을 때 처음 잡은 총, 제일 익숙한 것. 총알을 하나 하나 밀어넣고는 주머니에 여분의 총알을 챙겼다. 동식의 머릿속에서 서인우가 자신에게 총을 가르쳐 주던 순간을 회상했다.


 

제 손 위에 총을 겹쳐 쥐고, 주먹 하나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의 거리로 속삭이는 그에 육동식은 양 뺨이 장밋빛으로 붉어지는 것을 느꼈었다. 다정히 속삭여대는 목소리에, 제 손 위에 올려져 손등을 간지럽히는 손가락에 말이다.



 

동식은 과거를 회상하면서 헛웃음이 나왔다. 그가 가르쳐 준 이 따위 고철덩어리로 그를 죽여야 한다니. 웃기지 않는가. 











 

“일단, 당신을 죽여야 다 완성되는 거니까는, 원망하지 마요.”
 

“죽일 수 있겠어요?”

“ㅁ,물론이죠, 그거 하나 못할까봐요?”


 

육동식이 떨리는 손가락으로 리볼버를 잡았다. 까드득하고 총알이 장전되는 소리가 들렸다. 원통이 한 번 굴러가며 이제는 준비가 되었다는 듯이, 입술을 앙 다무는 동식이었다.


 

“잘 쏴요, 엄한 데 맞아서 실패하면 안되잖아요.”

“흐,”


 

육동식이 심호흡을 했다. 심호흡을 깊게 하고 서는 총구를 다시 그러쥐었다가, 다시 힘을 푸는 것을 반복했다. 이제는 어떻게 총을 쏘아야 할지도 헷갈릴 것 같았다. 그런 육동식을 서인우는 제 품을 내어 껴안아 주었다.


 

“이러면, 더 가깝죠? 실수 안할거예요, 우리 동식이는 잘 배워서.”

 


 

육동식은 그 순간 저의 뒤에서 총겨누는 자세를 잡아주던 그가 떠올랐다. 제 앞에 놓인 먹잇감이나, 명령이 아니고 그저 서인우로. 그는 그때처럼 다정하게 말을 걸었다. 거의 비슷했다. 조금 더 싸늘했던 것 빼고는 말이다.

 


 

“흐으, 못하겠어요. 아저씨이,흐, 저 진짜 아저씨 사랑하나봐요.”

“씁, 못된것만 배워서는.”


 

서인우는 육동식의 리볼버를 낚아채서는 육동식의 뒷통수에 꽂았다. 그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방아쇠를 당겼다. 육동식의 머리에는 총알이 단단히 꽂혔다. 총알이 뚫고 지나간 구멍을 따라 핏방울이 쏟아져 나왔다. 서인우는 무너지려는 육동식을 끌어올려 자신의 품에 감쌌다. 힘없이 흩어져버리는 그의 육신을 붙잡고는 입을 맞췄다.

 

“사랑해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얼어버린 동식과 눈을 마주쳤다. 얼굴에는 핏자국이 붉은 꽃잎처럼 흐트러져 피어있고, 컴컴하고 축축한 풀숲에서 그들은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동식아, 걱정하지 말고 딱 기다려. 금방 따라갈테니까.”

서인우는 제 머리에 동식을 죽였던 총을 꺼내 들어보였다. 제 품에 잠긴 동식을 끌어안고서는. 그는 제 연인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편안한 웃음으로, 죽어서 기다릴 동식에게 보여줄 미소를 상상하며. 방아쇠를 천천히 끌어당겼다. 숲속에 또 다른 총소리가 울러 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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