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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開花
W. 미사

 ※ 약한 살인 묘사, 자살 언급 有

 

 

 

단언컨대 서인우는 무언가에 열렬하거나 간절했던 적이 없었다. 오래전, 그러니까 이제는 생각도 나지 않는 옛날부터 그랬다. 비단 부유한 상인의 집안에서 태어나서는 아니었다. 그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없는 것 같았고, 없으면서도 있는 것 같았다. 근본적으로 어딘가 뒤틀린 데가 있다, 것을 서인우는 금세 잡아냈다. 낳아준 부모님이나 돌봐주던 행랑어멈보다도 빨랐다. 그건 서인우 혼자만 느끼는 이질감이었다. 이 사실을 알고 나자 주변에 쉽사리 공감이 가질 않았다. 타인에게 쉽사리 정을 붙이지도 못했다. 자신을 퍽 아끼던 아버지가 돌아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곡소리의 한복판에서 그는 사람들이 우는 이유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저를 두고 수군거리는 목소리를 들려왔으나 서인우는 그 죽음에 슬퍼해야 할 의무를 찾을 수 없었다.



 

 그가 위화감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된 건 거의 우연에 가까웠다. 아버지를 대신해 가게를 관리하게 된 어머니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던 때였다. 시전에서도 제일 규모가 큰 곳을 관리하게 된 어머니가 해야 할 일이 배로 많아지며 자연히 행랑어멈과 같이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서인우는 또래와 어울리는 시간보다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때가 훨씬 많았지만, 그녀는 자주 그에게서 시선을 돌리곤 했다. 조숙했던 그가 종종 무섭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서인우는 그녀가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가 옆에 있어봐야 그가 가진 이질감만 심화시킬 뿐이었으니 그로서는 오히려 그쪽이 편했다.

 

 서인우는 그녀가 부엌으로 향한 사이 뒷마당으로 향했다. 뒤뜰에는 아버지가 살아생전 직접 데려와 기른 개와 새끼들이 있었다. 봄 초입에 태어난 새끼들이 어미의 품을 차지하기 위해 제각각으로 꿈틀거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서인우의 눈에 들어온 건, 유달리 발육이 느린 새끼였다. 성인 남성의 팔뚝만도 못한 크기의 새끼 하나가 어미와 떨어진 곳에서 낑낑대고 있었다. 서인우는 걸음을 옮겨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생명체를 들어 올렸다. 생각보다 가벼웠다. 갑작스레 느껴지는 온기에 새끼가 버둥거리며 다시 소리를 냈다. 자세히 듣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작은 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일순 짜증이 일었다. 귀에 거슬려서 참을 수가 없었다. 당장 이 동물이 눈앞에서 없어졌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새끼를 죽인 건 한순간이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손에는 주먹만 한 돌이 들려있었고, 옷에는 혈흔이 튀어있었다. 피로 물든 손을 내려다보며 서인우는 겁을 먹는 대신 다른 종류의 쾌감을 느꼈다. 잠시나마 자신을 따라다니는 이질감이 기억나지 않았던 것이다. 내리 가지고 있던 위화감이 사라지던 순간에는 비로소 세상의 일부가 되었다는 느낌도 들었다. 생명을 어그러뜨린 행위가 해방구처럼 다가왔다. 가만히 숨이 끊긴 시체를 바라보고 있자니 뒤늦게 그를 찾으러 온 행랑어멈이 소리를 질렀다. 서인우는 아무렇지 않게 뒤를 돌았다. 비명을 듣고 달려온 하인 둘이 경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자초지종을 들은 어머니에게 서인우는 느낀 바를 솔직하게 털어놓기보다 “너무 시끄러워서 그랬어요.”라는 대답을 했다. 처음 겪은 일과 기분이었지만 적어도 누군가에게 말하면 안 된다는 건 눈치로 알 수 있었다.

 

 한동안 말이 없던 어머니는 매질을 하는 대신 말없이 그를 돌려보냈다. 문을 열고 나오자 방문 앞에 서 있던 하인 둘이 그의 눈치를 보았다. 낮에 광경을 목격했던 이들이었다. 미리 입막음을 당했는지 그들은 아무렇지 않은 척 그를 대했지만 언행이 눈에 띌 정도로 전과 상이했다. 마치 이방인을 어쩔 수 없이 포용하는 듯한 태도였다. 사람들 틈바구니 안으로 들어섰다고 생각했는데, 되려 배척당한 기분이었다. 무엇보다도 그 중심에 자신이 있다는 사실이 아주, 더러웠다. 저들도 죽이면 자신을 격리시키는 선을 넘어설 수 있을까. 조용히 그들을 마주하자 하인들이 이내 눈치를 보다 앞다투어 사라졌다. 모퉁이로 사라지는 등을 보며 서인우는 자신의 단점―비록 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지만―을 감출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후로 서인우는 좀 더 아이처럼 굴었다. 그가 저질렀던 사고는 어느 새 잊혔으며, 그 일을 목격했던 이들은 아이가 뭣 모르고 한 짓이라고 단정 지었다. ‘어리다’는 것은 제약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좋은 핑곗거리이기도 했다. 그는 영민하게 그것을 받아들였다. 나이에 따라 사회에서 용납해 주는 상한선은 존재했다. 사람들은 어떤 상황이나 나이, 장소에서 타인에게 요구하고 기대하는 감정과 행동이 있었다. 그것은 너무나 명시적이었기 때문에 남들을 따라 하는 것은 너무도 쉬운 일이었다.

 

 어머니는 서인우가 관례를 올리고 과거를 치러 조정에 나아간 지 몇 년이 되지 않아 돌아가셨다. 그녀의 부고를 들은 서인우는 고민 없이 사직했다. 아쉽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마침 사대부니 뭐니 하는 것들에 이골이 나있기도 했다. 관복을 벗은 서인우는 집안 대대로 해오던 장사판에 뛰어들었다. 몇몇 이들이 무시해오기도 했지만 서인우는 제법, 아니, 아주 잘, 돈을 가지고 놀았다. 굳이 머리를 쓸 필요도 없이 돈의 흐름이 눈에 들어왔다. 재능이라면 재능이었다. 그에게 축적되어 있는 재화와 탄탄히 마련된 기반 위에서의 숫자놀음은 물 보듯 쉬운 것이었다. 다만 일을 하다 보면 반갑지 않은 손님이 올 때가 있었는데, 모두 죽은 어머니의 손님들이었다. 원래 그녀는 산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 사이의 거간꾼으로, 어떤 일을 했는지는 알 수는 없지만 드물게 다른 존재들을 상대할 때가 있었다. 그녀를 닮았는지 서인우도 그들을 보고 들을 수 있었는데, 그는 헛발 걸음 한 이들에게서 “그 고생을 하더니 인간 태는 나게 만들어놨다."라는 말을 듣곤 했다. 뜻을 묻지는 않았지만, 어머니가 이리저리 고생했을 거란 예상이 갔다. 서인우는 그녀가 괜한 힘을 썼다고 여겼다. 그도 그럴 게, 항상 그녀가 죽기만을 기다려왔기 때문이었다. 이제껏 얌전히 있었던 건 나름의 보답이었다. 자신이 사람이라면 응당 갚아야 하는. 그러나 그런 사람이 사라진 이상 예전과 같을 이유는 없었다. 그는 더 이상 버둥거리는 동물의 몸을 갈라 속을 멋대로 헤집어놓는 것에서는 아무런 충족감을 얻지 못 하게 된 지 오래였다. 언제 넘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임계점이 끝에 다다라있었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건 잠시나마 함께 관직생활을 했던 이를 마주치면서였다. 십 년이 넘었는데도 전혀 늙지 않은 것 같다는 말이 걸렸다. 실제로 그는 처음 살인을 저지르던 날로부터 조금도 달라진 게 없었다. 왜인지는 몰라도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었다. 그는 사람들이 평범함을 벗어난 이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겪은 바 있었다.

 

 비밀리에 이름이 났다 싶은 의원들을 찾아다녔지만, 어디에서도 마땅한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마 우연히 공양을 받으러 왔던 중이 아니었다면 서인우는 계속 허탕만 쳤을 것이었다. 중은 가주家主를 두고 “거둬갈 수도 없을 만치 혼이 썩어 차사들이 걸음 하지도 않는다.”라고 말하고서는 잡을 새도 없이 사라졌다. 그 말을 전해 듣고 서인우는 빠르게 이 일을 해결하는 것을 포기했다. 어쩔 도리 없는 일에 매달릴 바에 다른 데 신경을 쓰는 게 나아서 이기도 했고, 당장 몇 가지 문제들이 눈앞에 다가와서 이기도 했다.

 

 지금이야 유야무야 넘어가고 있다지만 시간이 더 흐르면 의문을 품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다. 자연히 소문과 골치 아픈 일들이 생겨날 텐데, 그게 자신이 일궈온 것들을 무너뜨릴 것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골치가 아팠다. 하여 서인우는 몸이 좋지 않아 자리를 비워야 한다는 핑계를 대고 외진 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장사를 접을 수는 없었으니 오랜 시간 제 밑에서 일하던 상인에게 총괄적인 책임을 맡기고, 자신을 대신해 집과 가게를 오갈 수 있는 사람을 하나 구했다. 서신을 통해 가게를 관리할 자신의 옆에서 시중을 들어야 하니 한문을 읽을 줄 알고, 본가를 떠나도 좋은 사람어야 했다.

 

 그렇게 만난 사람이 육동식이었다. 그는 더 이상 양반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가문의 자제였는데, 모친상을 당하고 아버지마저 병에 걸리게 되면서 현실을 직시했다. 그의 몫은 입신양명이 아니라 어린 동생을 포함한 가족들을 위해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여러 해 동안 준비한 과거를 포기한 게 아쉬울 법도 했는데 육동식은 자신의 선택이 괜찮다는 듯 굴었다. 체념이라기보단 긍정적인 수긍에 가까웠다. 종종 서책들을 빌려 읽는 걸 보면 욕심이 아예 없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육동식은 그걸 놓아버리고도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서인우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도련님, 수선화예요.

 

 육동식은 서인우를 그렇게 불렀다. 그의 조상이 본다면 기함할 일이었으나, 그게 아니면 마땅히 부를 만한 호칭도 없었기 때문에 서인우는 육동식이 그러면 그러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서인우는 육동식 손끝의 하얀 꽃을 내려다보았다. 평생 관심이 없어 수선화가 그렇게 생겼는지도 그는 그때 처음 알았다.

 

 꺾을 겁니까?

 

 그건 아니고, 보여드리고 싶어서요.

 

 서인우가 미심쩍게 되물었다.

 

 나한테요?

 

 네. 요즘 양반들 사이에서 유행이라고는 하는데, 길가에 핀 건 처음이에요.

 

 그래요? 유행이라고까지 하니까 신기하네요. 그냥 꽃인데.

 

 서인우가 허리를 굽혀 작은 꽃 머리를 꼼꼼히 살폈다. 어떤 감상이 생긴 건 아니었다. 애초에 그는 별 볼 일 없는 것들을 지금처럼 자세히 본 적도 없다. 미물은 그에게 아무 흥미도 가져다주지 못했다. 그는 육동식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눈이 마주치자 큰 눈이 사르륵 접혔다. 웃는 얼굴이 말갰다. 사실, 그냥 꽃이지만…

 

 좋은 걸 보니까 도련님 생각이 났어요.

 

 서인우를 올려다보던 육동식이 내뱉은 말이었다. 그 말은 조금, 이상하게 들렸다. 서인우가 잠시 고민하는 사이 붉어진 귀를 한 육동식이 이만 가자며 앞장을 섰다. 그의 옆에서 한참을 걸으며 육동식의 말을 곱씹던 서인우는 불현듯, 내가 좋습니까? 했다. 아주 직설적인 물음이었다.

 

제가요?!

 

좋은 걸 보면 내가 생각난다는 건, 내가 좋다는 말과 상통한다고 보는데.

 

 육동식이 우뚝 멈춰 섰다. 몇 발자국 앞선 서인우가 고개를 돌렸다. 육동식은 입을 벌렸다 다물었다. 목덜미까지 붉어진 게 속내를 들킨 사람 같았다. …싫으세요? 터져 나온 문장 뒤로 육동식이 무어라 변명을 늘어놓기 전에 서인우는 먼저 선수를 쳤다. 글쎄요. 좋은 걸 보고 누군가를 생각한다는 게, 어떤 건지 알 수 없는 거라서요. 대신 나도 좋은 걸 보면 당신을 생각해보도록 하죠. 이번에는 서인우가 먼저 발을 뗐다. 먼저 가고 있자니 뒤에서 육동식이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가, 감사해요. 뒷말이 기어들어갔다. 육동식이 품에 든 서책 모퉁이만 만지작거렸다.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육동식을 보면서, 서인우는 속으로 별스럽게도 곰살맞다,는 생각을 했다.



 

 시간은 조용하게 흘렀다. 육동식은 서인우의 곁에서 그가 시키는 잡다한 일들을 처리했다. 생각보다도 야무져서 의외였다. 마냥 서생인 줄로만 알았더니 생각보다 이윤을 좇는 일에도 제법 기질이 있었다. 덕분에 서인우는 육동식과 말을 섞는 일이 더욱 잦아졌다. 공적인 대화가 사적으로 흘러가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서인우가 수다스러운 편은 아니었으므로 대화를 이끌어나가는 건 주로 육동식이었다. 감정이 워낙 풍부해서인가 육동식은 짧은 대화 속에서도 다양한 속내를 드러냈는데, 그게 퍽 신기해 서인우는 조잘대는 목소리를 한동안 내버려 둔 적도 있었다. 누군가와 있는 시간에서 여유를 느낀 건 그게 처음이었다.

 

 평화가 깨진 건, 육동식이 처음으로 서인우와의 약속을 어겼던 데에 있었다.

 

 소기의 목적과 달리 살인이 더는 의미를 가지지 않았음에도 서인우는 타인을 죽였다. 멈출 수 없어서라거나 한 건 아니었다. 그저 불현듯 솟구치는 이질감을 없앨 수 있던 유일한 방법이 누군가의 숨이 꺼져가는 과정을 보는 취미로 변질되었을 뿐이었다. 그 변화를 서인우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죄책감이 들지는 않았다. 애초에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할 양심의 가책을 느낀 적이 없었으니 그 의미 없는 행위에 죄책감이 수반될 리 만무했다.

 

 이번 목표물은 떠돌이 거지떼 사이에서도 제일 보잘것없는 남자였다. 다리를 저는데도 뒤쪽에서 동떨어져 걷는 것을 보면 무리에서도 소외된 모양이었다. 도태된 먹잇감을 낚아채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툭, 손에 들려있던 보따리가 떨어지고, 서인우의 눈이 소리가 난 방향을 향해 돌아갔다. 가족을 만나고 닷새 후에나 보여야 할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있었다. 시선이 마주치자 육동식이 주저앉았다. 서인우는 들고 있던 칼을 고쳐 쥐며 일어났다.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던 육동식의 등에 창고 벽이 닿았다. 등잔불에 비친 얼굴에 피가 튀어있었다. 엷은 옥색의 두루마기에도 피가 흥건했다. 믿기지 않는 광경들을 보며 육동식은 몇 가지 생각들을 떠올렸다. 주기적이지는 않지만 한 해에 두 번씩, 절대 들어가지 못하게 자물쇠를 걸어둔 창고, 피해자들의 신분이 신분인지라 아무도 제대로 관심을 가져주지 않던 몇 차례의 실종사건들. 시야가 아득했다. 육동식이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저를 보내고 나면, 늘 이러셨어요?

 

 알고 싶어요? 알면 어떡할 건데요?

 

 …관아에 알릴 거예요. 가만히 있으면 또 이러실 거잖아요. 죄를 짓고, 묵인하고, 다시 반복하고……. 그렇게 살 수 없어요. 무지도 죄라고 배웠어요. 저에게도 죄가 있다면 벌을 받을 테니 도련님도 마땅한 죗값을 치르세요.

 

 기실 서인우는, 어떤 대답이 나오더라도 육동식을 죽일 생각이었지만 정말이지, 육동식은 쓸데없이 올바르고 곧았다. 적당히 굽히면 어련히 좋았을 텐데. 눈물을 닦아내는 육동식을 보는 서인우는 무표정했다. 그는 육동식 위에 올라타 그를 제압하고는 두 손을 육동식의 목에 가져다 댔다. 말이 안 통하더라도 죽이면 끝이다. 해결법은 간단명료했다. 손바닥 밑에서 빠르게 뛰는 맥이 집혔다. 좀 더 힘을 주자 육동식이 발버둥 쳤다. 캑캑대며 숨을 찾는 꼴이 가련할 법도 했으나 서인우는 손을 풀지 않았다. 자신의 아래에서 사그라드는 목숨은 너무나도 연약하고 무력했으며, 보잘것없었다. 숫제 묘한 만족감도 차올랐다. 그래서 그는 반항하던 몸이 얌전해지고 나서도 내리 육동식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육동식이 다시 눈을 뜰 일은 없어 보였다.


 

 어느 날 문득, 아주 문득, 무언가 켜켜이 쌓이다 불시에 터져버린 것처럼 서인우는 육동식이 보고 싶다, 고 생각 했다. 서양 각국에서 뻗쳐오는 손길에 한 나라가 처참히 짓밟혀 사라지고도 몇 년이 흐른 후였다. 부모도 그리워한 적이 없거늘, 이상하게 육동식이 자꾸 떠올랐다. 그가 다시 보고 싶었다. 그것도 아무 여지도 없이 자신이 직접 죽인 사람을.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는 계속해서 육동식을 생각했다. 그 언짢고 거슬리는 생각을 두고 며칠간 고민하던 서인우는 불쾌함을 털어버리기 위해 옛날에 살던 터로 향했다. 아무도 찾지 않아 폐가는 거미줄이 쳐져있었고, 마루에는 먼지가 앉아있었다. 낡고 헤진 부분들도 눈에 들어왔다. 그는 한때 집이자 살인 장소였던 곳을 훑다, 뒤편으로 향했다. 뒷문 밖에 산으로 향하는 길이 나있었다. 사람이 잘 다니지 않아 군데군데 길이 끊겨있었으나, 서인우는 아무렇지 않게 발을 내디뎠다. 몇 십 번을 오르내렸던 길은 여전히 익숙했다.

 

 쉬지 않고 산을 오르던 서인우는 한 나무 아래서 멈춰 섰다. 산에 있는 것 중 제일 큰 나무였다. 육동식이 묻은 곳이 여기쯤인가. 묘비도 없었으니 대충 그렇게 가늠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 그러고 있자니 그는 어딘가에서 육동식이 도련님! 하고 자신을 불러올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불쾌감을 없애고자 온 곳인데, 도로 불쾌감이 일었다. 이번에는 역할 정도로 심했다. 미간이 사정없이 찌푸려졌다. 서인우는 어떻게 해야 이 아니꼬운 기분이 사라질지를 골몰했다. 육동식으로부터 기인한 것은 확실하다.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 있는지 따져본다면 팔 도에 닮은 사람 하나 없겠느냐만, 그건 육동식이 아니다. 만족될 리가 없었다. 그러니 분명한 점은 이 감정은 육동식이 있어야만 사라질 거라는 것이다. 서인우는 무성하게 자란 풀을 내려다보았다. 반드시 육동식이 있어야만 한다. 그렇다면, 육동식을 도로 되살리는 수밖에 없겠다. 막연함 속에서 서인우는 간단하게 문제를 매듭지었다.



 

 서인우는 가지고 있던 모든 재산을 정리했다. 없는 죄도 만들어내 씌울 수 있는 시대인지라, 어디서 책이라도 잡히면 이래저래 귀찮아질 것을 걱정해 계획하고 있던 일이긴 했다. 필요한 자금만 챙긴 뒤 그는 부러 연을 만들어 둔 골동품 가게의 사장에게 재산을 맡겼다. 미리 선금을 내놓자, 사장이 눈을 빛내며 휘파람을 불었다. 요즘 유행하는 신여성의 모습을 한 사장은 침략자에게 줄을 대놓은 사람 중 하나였다. 골동품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은 대부분 고관대작들이었으니 그녀의 선택지 중 하나였을 것이었다.

 

 “기실 좀 의외예요. 저는 선생님이야말로 저와 같은 선택을 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이익을 좇으려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건 선생님이셨으니까요.”

 

 “죽어도 그러지 않았을 사람을 찾으러 가는데, 억지로라도 끌고 오려면 나한테 켕기는 건 없어야 하지 않나?”

 

 “글쎄요, 제가 보아온 서 선생님 답지 않으신걸요. 아니라고 하시니 그렇다고 하겠지만. 언제 돌아올 예정이세요?”

 

 “모르겠는데.”

 

 “그분이 어디 계신지는 몰라도 데려오는 게 오래 걸릴 모양이네요.”

 

 이미 자연의 품으로 되돌아간 것을 되돌릴 방도는 없었다. 적어도 사람이 아는 선에서는 그러했다. 서인우는 한참 전 발길이 끊긴 존재들을 떠올렸다. 비록 뒤를 잇지 않았지만. 약해졌을지 몰라도 아직 이 땅 어딘가에는 분명히 있을 것이리라고 짐작했다. 인간이 만들어지기 전, 생물들이 존재하기도 훨씬 전 지구의 주인이었던 최초의 존재들. 해서 그는 발길이 닿는 대로 숨이 다해 가는 것들을 찾았다. 힘이 다해 죽은 것들부터 시작해 산산이 흩어진 덩어리들까지도 빠짐없이 찾아 돌아다녔다. 그 과정에서 그는 내심 우연히라도 죽을 수 있길 바랐으나, 늙지 않는 신체는 크게 다치지도 않았다. 서인우는 수면을 취하는 것 외에 굳이 무언가를 먹을 필요도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목숨을 끊으려는 시도가 모두 실패로 돌아간 덕이었다. 흘러가는 매 분은 고루하고 지겨웠다. 진심으로 서인우는 진절머리가 났다. 누군가를 죽이는 것도 그만둔 지 오래였다. 어느 것 하나 흥미로운 게 없었다. 영원은 아무리 감아올려도 끝이 나지 않는, 길게 늘어진 실타래 같았다.

 

 전국을 돌아다니는 일이 점점 더 무의미하게 느껴질 즈음, 서인우는 발을 헛디뎌 떨어진 낭떠러지 밑에 있는 작은 동굴에서 그것을 찾을 수 있었다. 입구에서부터 고약한 냄새가 났다. 사체가 썩는 것과는 사뭇 달랐다. 그는 동굴 벽을 더듬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깊지 않은 동굴 끝에 그가 찾아 헤매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 빛이 들지 않는 구석에 웅크려있었다. 본래 장대하고도 아름다웠을 형체는 볼품없이 줄어들어있었고, 알 수 없게 흘러내린 외관에서는 검은 액이 뚝뚝 떨어졌다. 쯧, 서인우가 혀를 차고 등을 돌렸다. 이번에도 허탕이었다.

 

 밖으로 나서려는 그의 걸음을 세운 건 죄 갈라진 목소리였다. 네가 왜 안 죽는지 알아? 소름 끼치는 음성에 서인우가 발을 멈추고 그것을 돌아보았다.

 

 존재는 하지만 세상에서 지워져서 그래. 태어나면 안 됐으니까. 삼신이 점지한 걸 잡아먹고 태어난들 본인 것인 적이 없던 삶을 소유할 수 있을 리가 있겠어? 그런 놈에게 제대로 된 명부가 있을 수 없지.

 

 으스대는 말투는 명백히 서인우를 깔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화를 내는 대신, 조용히 생각했다. 기억도 나지 않는 전생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일이 저질러진 마당에 뭘 어쩌겠는가. 전생에 자신이 무엇이었고 또 어떤 일을 저질렀든, 지금 자신이 그걸 속죄해야 하는 마땅한 이유가 없다. 어쨌거나 자신은 인간으로 이 땅에 발을 딛고 서있다. 원하는 대로 완벽하게 살아온 생과 함께. 이 삶에서 자신이 범한 실수는 단 한 가지다. 그는 그 실수를 되돌리고 싶을 뿐이다.

 

 서인우는 담담하게 자신이 찾아온 목적을 이야기했다. 그의 의중을 파악한 신은 낄낄거리면서 웃더니 곧 죽을 마당에 못 해줄 것도 없다는 듯, 쉬이 방법을 일러주었다. 방법을 들은 서인우는 잠시 침묵했다. 그걸 망설임으로 받아들였는지 신이 그를 신랄하게 비웃었다.

 

 죽은 이를 억지로 되돌려놓는데 그 방법이 정상적일 리가. 그러게, 쌓아올린 업보로 얼굴도 안 보일 지경인 네가 뭘 어쩔 건데. 시간만 낭비했다, 너. 아니지, 어차피 죽지도 못 할 텐데, 그건 상관이 없나?

 

 웽웽 울리는 목소리에 서인우는 인상을 찌푸린 채 되물었다.

 

 겨우 그거면 충분합니까?

 시종일관 키득거리던 웃음소리가 뚝 끊겼다.

 너 때문에 그 애까지 잘못되는 건데, 그래도 괜찮니? 걔마저 세상에서 지워버릴 셈이야? 차라리 끝을 달라고 해.

\

 마지막 말은 꽤나 달갑게 들렸다. 그렇잖아도 그는 마지막이 없는 시간에 넌더리가 난 참이었다. 그렇지만― 여기서 서인우는 인정해야 했다. 자신은 단순히 육동식이 보고 싶은 게 아니었다. 솔직하게 말해 그는, 육동식과 시간을 ‘공유’하고 싶었다.

 

 걔가 망가지는 게, 나 때문이라는데 망설여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더군다나 서인우는 더더욱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상대방은 대답이 없었다. 다소 조바심이 들었지만 그는 기다렸다. 과거의 영광을 잃고 죽어가는 신이다. 다른 곳으로 움직이지도 못할 것이었다. 대답은 한참 후에야 들려왔다.

 

 너 아주, 이기적이다.

 

 서인우는 그 말을 정정하지 않았다. 이미 아는 사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살아있는’ 육동식이 곁에 있어야 한다는 거였다.

 

 …돌아갈 곳이 영영 사라진대도?

 

 마지막 물음에서 그는 이 초월적 존재가 가진 막연한 두려움을 읽을 수 있었다. 신은 끝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 육신마저 잃고 나면 신은 정신만 남아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부유하다 시간과 시간 사이에 얽매인 채 사라질 것이다. 기억해 주는 사람 없이. 명맥을 유지하겠답시고 살생을 저지른 대가였다. 새카맣게 변한 흐릿한 형체가 그 반증이었다. 푹 파여 악취나는 액이 들어찬 눈을 들여다보며, 서인우는 입을 열었다. 그게 왜? 내가 어디 있든, 내 끝이 어떻든 걔는 나와 함께 있어야지. 차오르는 즐거움에 그는 태어나 처음으로 기쁘게 웃었다.

 

 

 

 

 자본을 굴리는 일은 전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전쟁이 끝나고 묵직한 사건이 몇 차례 지나간 후 어수선함이 정리되자 그는 최대한 빠르게 시장을 넓혀나갔다. 한 세기 넘게 해왔던 일은 몸에 아주 익어있었다. 그는 인간관계에 질리도록 익숙했고, 적재적소에 패를 꺼내들 줄도 알았다. 회사가 안정적인 궤도에 들어서면서부터 서인우는 대리인들을 내세우고 뒤에서 조용히 움직였다. 의도적으로 접근해온 서인우에게 큰 도움을 받은 적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회장님. 수선화 좋아하세요?”

 

 “아뇨.”

 

 “이 넓은 곳이 다 수선화 밭인데요?”

 

 “처음 알게 된 꽃이긴 한데, 큰 의미는 없어요.”

 

 항상 전과 다름없는 것을 물어오는 육동식을 살리기 위해서는 매번 다른 사람의 목숨을 바쳐야 했다. 그게 언제까지인지, 얼만큼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무언가 충족이 되면 육동식은 다시 살아났다. 흐드러지게 핀 수선화 사이에서. 작은 봉분처럼 볼록하게 솟아오른 자리 아래에서 육동식은 자는 듯이 눈을 감고 있었다. 그를 데려와 씻기고 옷을 입힌 뒤 기다리고 있으면 어느 순간부터 숨소리가 들려왔다. 창백한 피부에 혈색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서인우는 처음으로 타인에게 기대감을 품었다. 닫혀있던 눈꺼풀이 열리고, 갈색 눈동자가 자신을 눈에 담는 순간에는 어떤 쾌감까지 느껴졌다. 눈을 뜬 육동식이 상황을 파악하고 있으면 서인우는 동식의 곁에 앉아서 속삭였다. 이제 일어났어요, 동식 씨? 하고.

 

 그러나 이상하게 육동식은 어떤 방식으로든 제 비밀을 알게 되었는데, 그러고 나면 그는 늘 같은 결말을 선택했다. 처음에 육동식은 손목을 그었고, 다음 번에는 아파트 단지에서 산산조각이 난 채 발견되었다. 서인우는 그게 탐탁지 않았다. 다시 돌아올 때마다 육동식이 매번 기억을 모두 잃고 돌아왔기 때문이다. 물론 육동식의 세상을 다시 자신으로 채워 넣는 행위는 즐거운 일이었지만, 그는 모르는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건 영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육동식이 세 번째로 눈을 떴을 때, 그는 육동식 한정으로 조금 더 다정했고, 조금 더 신경을 썼으며, 조금 더 유하게 대했다. 육동식을 오래 붙들어놓기 위함이었다.

 

 그러니 이번만큼은 허튼 생각을 못 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육동식이 사라졌다. 정확하게 말해 도망쳤다. 몇 주 전부터 상태가 이상하더라니, 사실을 알게 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육동식이 쓰는 방을 뒤지자 비밀번호를 알려주며 주었던 카드가 사라져있었다. 기록을 확인해보니 인근의 여러 은행에서 현금을 출금한 내역이 남아있었다. 하. 서인우가 헛웃음을 내뱉었다.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칠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깜찍하게 구는 건 앞에서면 충분한데. 혹시 몰라 연락 수단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 외에 육동식을 쫓을 방법은 없었다. 그는 굳은 얼굴로 다른 곳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가 본격적으로 숨었다면 이쪽도 응당 찾아줘야만 했다.

 

 

 

 몇 달 후 그를 찾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서인우는 육동식치고 제법 용을 썼다는 생각을 먼저 했다.

 

 육동식이 숨은 곳은 편의점조차 들어서지 않은 외진 시골의 허름한 주택이었다. 거액의 돈을 뽑아간 이유가 자연스럽게 맞춰졌다.

 

 서인우는 육동식이 있다는 층을 올려다보았다. 언젠가 들킬 거라는 건 본인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슬슬 돈도 떨어가고 있을 테니 다시 도망치기도 불가능하리라. 어느 모로 보나 서인우가 이길 수밖에 없는 게임이었다. 남은 건 육동식을 꺼내오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서인우는, 강제로 밀어붙이기보다 에둘러 가기를 택했다. 가끔은 자신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게 능사가 아닐 때가 있었고, 육동식은 그런 경우에 해당했다. 

 

 그런 이유로 서인우가 이곳을 오간지는 몇 주가 되어가고 있었다. 붙여둔 사람들의 보고로 육동식이 외출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억지로 데려오는 방법도 있지만 그건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서인우는 육동식이 제 발로 돌아오기를 바랐다. 하여 그는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인내심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말했다시피 육동식에 한해, 이런 수고로움을 들일 필요가 있었다. 어찌 되었든 서인우에게 육동식은 특별한 존재였으니까. 매체에 얼굴을 내비치지 않는다고 바쁘지 않은 건 아니었기 때문에 오래 있을 수는 없었지만, 금쪽 같은 시간을 땅에 버리고 나면 서인우는 꺾어 온 뒷마당에서 꺾어온 수선화를 현관문 앞에 두었다. 별 의미는 없었다. 예전에도 그렇고, 그저 육동식이 좋아한다고 생각해 매번 들고 왔을 뿐이다. 덕분에 문가에는 이제껏 가져왔던 수선화들이 썩은 채 쌓여가고 있었다.



 

 “내가 저런 것도 심으라고 했던가요?”

 

 정원을 관리하러 드나드는 늙은 노인이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청소와 정원 손질을 위해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저택을 방문하는 노인이었다. 서인우가 고르고 골라 데려온 만큼 입이 무거운 사람이었다. 돈과 침묵은 괜찮은 거래였다. 노인은 저택의 저택에서 일어나는 기묘한 일들에 대해 함구하는 대가로 외동아들의 매분 매초를 벌었다. 손절했어도 세상에 유일하게 남은 제 자식이다. 다른 사람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살아가며 반드시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것처럼 자신도 그냥, 그런 사람일 뿐이었다. 몇 년이 지났지만 노인은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저번까지만 해도 없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회장님께 드린다며 동식 씨가 구해다 심었던 꽃이네요. 수선화랑 같은 종이에요.”

 

 “그런가요.”

 

 “구근 식물인데, 피랑 뼈를 비료로 삼는 애들이거든요. 전쟁터였던 곳은 수선화 밭이 된다, 그런 말도 있고요.”

 

 “…….”

 

 “회장님 정원의 수선화들이 유달리 싱그러운 이유가 뭐겠어요.”

 

 노인은 이따금, 그런 말을 해왔다. 빈정거리거나 가르치려는 태도는 아니었다. 단지 직설적일 뿐이었다. 꼭 죄책감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려는 듯이. 노인은 몇 주 전엔가 씨앗을 심어도 되는지 묻던 얼굴을 상기했다. 웬 거냐는 물음에 꽃말을 알려줬더랬다. 그때 볼 위에 내려앉았던 홍조와 빨간 꽃잎은 닮은 데가 있었고, 붉은 감정을 품은 이의 시선은 딱 한 사람을 향해있었다. 저택에 사는 사람은 단 둘이었으니 상대가 누군지 궁금해할 필요도 없었다. 육동식은 보기 드문 사람이었다. 얕보일 수도 있을지언정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다정하고, 솔직하고, 반듯한 사람. 그러나 동시에 다른 이들과 다르게 땅에 묻히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기도 했다. 서인우의 유일한 예외.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만, 노인은 그것이 정말 육동식에게 좋은 일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노인은 육동식이 불쌍하다고 느꼈다. 아마도 그가 서인우의 곁에 있는 이상 변치 않을 것이었다.

 

 “…그래도 꽃말은 예쁘네요.”

 

 “꽃말?”

 

 “네. 관심은 없으시겠지만요. 그래도 궁금해지면 언제든 물어보세요.”

 

 노인은 허리를 펴더니 정원 안쪽으로 들어갔다. 서인우는 노인의 살짝 굽은 등을 바라보다, 저택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택은 여전히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저택에 오래 상주하는 사람이 없었으니 당연한 말이었다. 서인우는 소파에 눈을 두었다. 자신과 달리 자주 외출하던 서인우를 기다리며 육동식이 종종 앉아있던 곳이었다. 가끔은 지쳐서 잠들어 있던 때도 있었고, 영화에 몰입하느라 서인우를 알아차리지 못하던 때도 있었지만 이름을 부르면 그는 금세 자신에게 집중했다. 그 기다림은 너무 당연한 일과이기까지 해서, 서인우는 그 사소함이 얼마나 품이 드는 일인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육동식. 이름을 불러보았으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다소 신경질적으로 걸음을 옮겼다.

 

 서재는 남쪽으로 창이 나있었다. 정원을 자주 거닐곤 했던 육동식 때문이었다. 2층에서 정원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공간은 서재가 유일했다. 서인우는 코트를 옷걸이에 걸어두고 의자에 앉았다. 책상 한 편에 결재해야 할 서류들이 쌓여있었다. 평소였다면 잠시 쉬었다 서류를 검토했겠지만, 그는 육동식이 목숨을 끊지 않은 이유를 생각했다. 육동식이 그 남루한 데에 처박힌 후 계속 신경 쓰이는 게 있었다.

 

 처음에 자살을 선택한 건 그러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어서였을 것이다. 육동식의 사고방식쯤이야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기억이 없어도 육동식이 달라지는 건 없었다. 육동식의 바탕이 되는 것들이 어느 하나 빠짐없이 그대로였다는 소리다. 그러니 서인우가 알고 있는 육동식이 맞다면, 그는 이전과 같은 선택을 해야만 했다. 멍청할 정도로 선하니까. 분명 그래야 했는데, 이번에 육동식은 달아났다. 마치 서인우를 피하는 것처럼. 서인우는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다른 행동을 하게 된 변수가 있을 것이다. 뭐가 바뀌었을까. 대체 어떤 게 그가 죽지 못하게 막았나. 자신이 아닌 다른 것의 개입이 있었다는 건 상상만 해도 기분이 더럽다. 그냥 집안에 가둬둘 걸 그랬나 하는 짧은 후회가 스쳤다. 제일 처음에 육동식이 스스로를 좀먹다가 죽었기 때문에 그는 육동식을 외부와 아예 단절시키지는 않았다. 가끔 심심하다고 투정을 부린 적은 있었지만 그는 만족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제 세상이 그렇게 좁고 단조로운 이유가 서인우라는, 배려 없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잠을 충분히 자지 못 한 채로 머리를 굴리고 있으려니 관자놀이가 지끈 아파왔다. 서인우는 의자에서 일어나 창문에 가까이 다가섰다. 한창 만개한 수선화 때문에 하얗게 물든 정원이 시야에 들어왔다. 무심하게 뒷마당을 훑던 서인우는 오답처럼 피어난 꽃을 발견했다. 정원 중앙에 자리 잡은 튤립은 하얀 물결 사이에서 피를 머금은 것처럼 홀로 붉었다. 육동식이 직접 심고 돌보았다고 했다. 활짝 피어난 꽃을 보고 있자니 자연스레 육동식이 떠올랐다. 창밖으로 소리 없이 흔들리는 모양새를 쳐다보던 서인우는 번뜩 빛바랜 기억을 하나 끄집어냈다. 너무 오래되어 완전히 잊고 있던 것이었다. 좋은 걸 보니까 도련님 생각이 났어요. 스쳐가는 기억에 서인우는 빠르게 생각을 짜 맞췄다. 내리 품고 있던 문장들이 조각나더니 일렬로 줄을 선다. 죄책감에 죽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 이유가 생겼고, 그 정체가 부지불식간에 생겨난 감정이라면? 간단한 명제가 참인지 거짓인지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였다. 서인우는 다급히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문을 열고 나가자 정원 끄트머리에서 일하는 등이 보였다.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노인이 고개를 돌렸다.

 

 “저거. 육동식 씨가 말한 꽃말 뭐였습니까.”

 

 무슨 일이냐는 그 눈에 대고 서인우가 물을 건 그것밖에 없었다.



 

 “동식 씨. 나 왔어요. 오늘은 시간이 없어서 금방 가야 할 것 같아요.”

 

 문 안쪽은 여전히 조용했다. 언제쯤 얼굴을 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다만 육동식에 대해 알게 된 것이 늘어난 서인우는, 더는 조급함을 느끼지 않았다. 그는 허리를 숙여 튤립을 내려놓았다. 활짝 만개한 꽃은 아직도 땅에 뿌리를 박고 있는 양 싱그러웠다. 누군가의 피를 먹고 자라서인가 그 색이 진하고 영롱했다. 그러고 보면 어떤 감정은 그런 색이었다. 반드시 상대가 있어야만 틔울 수 있는 것처럼, 눈치챌 새도 없이 숙주에 기생하여 자라나는 것처럼. 서인우는 다정스레 웃었다.

 

 네가 내 간절함이라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었다면.

 

 “정원을 새로 가꿨는데, 동식 씨가 한번 봐줬으면 해요. 분명 마음에 들어 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오롯이 동식 씨만을 위한 거거든.”

 

 네가 원하는 놀음에 얼마든지 어울려주겠노라고.

 

 말을 마치고 서인우는 문 앞에서 육동식의 생각을 가늠했다. 꺾인 수선화를 복도 한편에 가지런히 놓아둘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다. 육동식은 이번에도 자신이 두고 간 꽃을 확인하러 나오리라. 본인이 심은 꽃이니 어떤 뜻인지도 알 것이다. 육동식은 돌아올 것이다. 그래야만 했고, 또 그럴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 이번은 길지 않으리라고, 서인우는 확신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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